사람이 살다보면 안게 되는 슬픈 이야기가 한둘 쯤 있을 것이다.

세일러문 어나더 스토리는 나에게 그런 소프트이다.

중학생 시절, 게임은 좋아하지만 게임을 많이 할 환경은 안 됐던 나는 게임잡지를 즐겨봤고, 잡지를 통해 당시 보던 만화 세일러문이 게임도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험하다는 용산에 발을 들였다.

그곳의 한 게임샵에서 이 게임의 알팩을 발견했다. 가격이 꽤 셌지만 직원은 정품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무튼 구했다는 사실에 만족해서 돌아와 게임을 켰다. 장르는 롤플레잉. 나는 일알못.

당시 세상에는 공략 없이도 세이브로드 글자만 외워서 감으로 게임 하는 초인들도 많았지만 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항상 켜서 어디로 가야 할지 행선지도 알지 못 한 채 맵을 돌아다니다가 잘못 들어간 고렙 적 나오는 곳에서 맞아죽기 일쑤였다. 혹은 아무 전개도 없는 맵을 돌아만 다니거나.

설상가상으로 게임은 세이브가 되지 않았다(이때는 이유를 몰랐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작해 삽질하거나 기존 저장 데이터를 불러다가 삽질하다가 끄곤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결국 포기하고 나는 팩을 되팔거나 교환할 셈으로 게임을 샀던 바로 그 샵을 찾았다.

직원은 복팩이라 얼마 못 쳐준다고 했다.

정품이라 비싸다고 말한 직원 본인이었다.

세이브가 되지 않은 것도 복팩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어린 나이에 용팔이가 왜 용팔이라고 불리는지를 깨달은 날이었다.

 

이 아픈 에피소드로 인해 내 게임 인생에서 이 소프트가 손끝에 박힌 가시처럼 남았었으나 요즘까지 멀쩡한 패미콤과 팩이 있겠는가 싶어서 마음을 접고 있다가 트친분들을 통해 레트로겜 돌려주는 기기가 있다는 것과 팩들을 잘 관리해 유통하는 레트로겜 샵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레트로겜 샵이 있는 건 알았는데 소프트 뜯어서 배터리 교환하고 그런 건 유저 몪인 줄 알았었다).

기기를 라이센스적 의미로 좀 고민했는데...일본 아마존에서 팔 정도면 최소 그레이존이겠지 싶어서 레트로프릭스를 구입하고, 소프트는 레트로겜 모으시는 트친분이 재고 찾아주셔서 국내에서 무사히 구했다.

그렇게 게임이 발매되고 24년만에 제대로 플레이를 시작했다.

 

대망의 스타트. 이 화면만 몇 번을 보았던가....

그때와 다른 점. 나는 일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게임내 텍스트도...공략페이지도...!

확실한 목적지를 가지고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ㅠㅠㅠㅠ

 

주요 타겟이 타겟일 테고+미디어믹스 작품이라 맵도 그렇게 넓지 않고 이동이 복잡하지 않으며 레벨업 노가다가 없지는 않으나 어려움을 겪을 부분은 몇 군데 없었다. 게임 길이 자체도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스타트는 10월 초였지만 게임을 켠 건 열흘 미만에 장시간 투자한 건 지난 주말 정도니까...나는 쓰지 않았지만 렙99로 시작하는 치트키가 있다고 하니까 그것까지 사용하면 실 플레이타임은 더 줄어들 듯.

하지만 스토리는 나름 잘 짜인 것 같았다. 세일러문이라는 작품 분위기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본편에 나왔던 적들을 모두 재등장 시키는 시나리오가...사실은 만화책 중학생 때 좀 보다가 끊었던 걸 이번해에 전자서적 해금되고 비로소 완결까지 봤는데...다시 되돌아보며 곱씹을 수도 있고 해서 재미있었다.

 

짜임새야 뭐 본편부터가 견고하진 않고 해결도 늘 환상의 은수정 무쌍이니까(...)

 

아무튼 만화책 본편과 게임 둘 다 우연히도 이번해에 다 털 수 있었다. 재미를 떠나서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

...게임을 그렇다 치고 만화책이...재밌게 봤던 그 어렸을 적에 그 때 감성으로 완결까지 봤어야 했는데...내가 성인 되고 감성이 변해서 그런가 아니면 이야기 전개 방식이 매 사건에서 다 일률적이라 그런가, 그림 이쁘다ㅎㅎㅎ하면서도 전개 졸려 죽겠더라. 

다만 생각보다 다른 세일러 전사들이 우사기를 백합적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건 놀라웠다.

 

무엇보다 지금 성인 감성으로 힘든 거.

변신하고 서로 일일이 호칭 챙겨 부르는 게 오글이토글이야 턱시도가면 어쩔라어린허ㅣㅓ비ㅓㅁ;어하ㅓ;ㅁ;ㅏㅣㄴ

거기다가 지금 보면 미래의 네오밀레니엄 그냥 엄청 디스토피아 세계관 같아 보여......

이래서도 세계는 10대가 구해야 하나 보다.

그리고 코믹스에서도 맨날 먼저 쓰러지고 먼저 잡혀서 방해되는 턱시도 가면은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쓰러지고 다음엔 잡히고 둘 다 알뜰살뜰하게 챙겼더라.

 

두 개는 일단 사서 플레이했다는 인증 정도로.

레트로프릭스가 그레이존일 수는 있겠지만 아무데서나 세이브가 가능하고 도트 튀어서 글자가 읽지 못할 수준인 걸 테두리 다듬어 부드럽게 보여주는 필터 기능이 있다는 점 때문에 난 그냥 마음 내려놓고 쓰려고 한다.

앞으로도 기억에 남는, 혹은 어렸을 때 해보지 못 했던 소프트들 발견하면 하나씩 해봐야지ㅎㅎ

 

끝으로 다 하고 남은 의문 하나. 

 

치비우사 연인 포지션은 에리오스였나 그 유니콘인 줄 알았는데...?

만화책 끝부분을 졸면서 봐서 그런가 가물가물하다. 만화랑 게임 다 털었다고 생각했는데 만화책 다시 들춰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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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2nd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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